지혜롭지만 결단성이 부족했던 한신

 

중국 역사에서 한신의 이름은 실로 유명하다. 한고조 유방조차 그와 비교하면 손색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관점에서 살필 수있다.

 

첫째는 전기적 색채가 짙은 한신의 일생 때문이다. 그는 일반 백성이었는데, 초기에는 가난에 시달리느라고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우울하게 보냈다. 심지어 참수까지 당할 뻔했는데, 나중에 시운(時運)이 바뀌어서 소하를 만나자 비로소 자신의 재주를 펼칠 수 있었다. 그와 관련된 사건으로 다른 사람의 다리 사이를 기어서 지나갔던 일, 빨래하는 아줌마가 밥을 주던 일, 소하가 달밤에 한신을 쫓아간 일 등은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둘째는 그가 유방의 미움을 사게 되어서 여후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인데, 그 비극적 운명이 사람들로 하여금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그가 망설이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왕으로 자칭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인데, 그 일은 천하에 뜻이는 영웅들의 마음을 태웠기 때문이다.

이상 세가지 이유 중에서 세 번째 이유는 중요한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는 바로 그 이유때문에 다른 두 원인도 비로소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한신은 무엇 때문에 왕이 되지 못하였는가? 무엇 때문에 참수를 당했는가? 무엇때문에 후세의 영웅들에게 그토록 끊임없는 유감을 자아내게 하였는가?

 

   기원전 203년 10월, 유방은 항우를 공격하였다. 한신은 군사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나아가서 조(趙), 연(燕) 두 나라를 평정하고, 다시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더 진군해서 제나라를 공격했다. 대군이 평원도(平原渡) - 지금의 산동성 서북부 - 에 이르렀을 때, 한신은 한왕(漢王)이 유세객 역이기(酈食其)를 제나라에 보내서 이미 제왕(齊王) 전광(田廣)을 한나라에 귀순하도록 설득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한신은 그 보고를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대부 역이기가 이미 제나라를 설득했다면 내가 무엇을 바라고 가겠는가,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서 한왕을 도와 초왕이나 공격해야겠다.'

    그리하여 그는 군대를 그 자리에 주둔하도록 명하고는 날짜를 택해서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한신의 모사 괴통(蒯通)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만류했다. 한신이 물었다.

   "제왕이 이미 귀순하였다고 해서 내가 돌아가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오?"

   괴통이 답하기를

    "장군은 명령을 받들고 제나라를 공격하러 왔습니다. 이런저런 곡절을 거쳐서 이제 제나라의 국경에 이르렀죠. 지금 한왕이 역이기를 제나라의 사신으로 보내서 입만 벙긋하는 것으로 제나라를 설득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진실인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하물며 한왕께서 아직 장군에게 아무런 명령도 전하지 않은 상황인데, 어찌하여 전해지는 말만 믿고 갑자기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또한 역이기는 일개 유생으로서 세치 혀끝으로 제나라의 70여 개 성곽을 공략했지만, 장군은 수만 명의 정예군을 거느리고도 1년 남짓을 싸운 뒤에야 겨우 조나라 50여 개 성곽을 공략했으니, 장군으로 몇 년을 지낸 자가 일개 유생보다 못한 판국인데 아무런 준비도 없는 틈을 타서 곧장 쳐들어가 제나라를 점령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공은 장군의 것입니다."

   한신이 그의 말을 잠깐 되새겨보니 과연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또한편 제나를 공격하면 역이기를 해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그대의 말에 일리가 있지만, 내가 그렇게 하면 제나라는 반드시 역이기를 죽일 것이오.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하겠소."

   괴통이 그의 말에 웃으면서 답하기를,

   "장군은 실로 은덕을 잘 지키십니다! 장군은 역이기의 입장을 생각해주고 있지만, 제가 알기로 역이기는 스스로 자원해서 제나라 설득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는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하였으니, 그가 먼저 장군을 어긴 것이 아닙니까?"

   한신은  괴통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즉시 군대를 동원하여 평원하(平原河)를 건너 역하(歷下)로 쳐들어갔다. 제나라 군사는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고 있다가 졸지에 패배를 당했다.

   한신은 그 기세를 몰아서 제나라 장수 전해(田解)를 죽이고 화무상(華無傷)을 생포했다. 그리하여 한신은 매우 순조롭게 임치(臨淄)의 성문 앞에 이르렀다.

   제왕 전광은 원래 역이기의 설득으로 한나라에 귀순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나라의 군사가 공격해온다는 소식을 듣자 급히 역이기를 불러서 호통을 쳤다.

   "내가 너의 말을 듣고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했더니, 네 놈이 다른 꿍꿍이를 꾸몄구나, 겉으로는 나를 권고하는 척하면서 군대를 철수하도록 하고, 속으로는 암암리에 한신의 군사를 불러들여서 나의 왕국을 전복하려 하다니, 그 죄는 실로 죽어 마땅하다."

   역이기가 대답하기를,

   "한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온 것은 제나라가 귀순한 소식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이제 대왕께서 저와 함께 사신을 동행시켜서 한신을 찾아가도록 해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한신이 군사 공격을 멈추고 제나라에서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제나라의 재상 전횡(田橫)이 외쳤다.

   "그렇게 되면 네가 벌써 멀리 도망쳤을 텐데, 어찌 또 네놈에게 속겠는가!"

   그리고는 역이기가 변명할 사이도 없이 그를 끓는 기름 가마에 넣겠했다.

   기원전 203년 11월, 한신은 용차(龍且)와 제왕 전광의 목을 베고 제나라를 평정했다. 이때 그는 군사 수십만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 실력은 당시 아주 대단한 것이었다.

   그때의 상황에서 한신이 한나라를 떠나서 초나라에 귀순하면 한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를 도와서 초나라를 공격하면 초나라가 멸망하며, 스스로 왕이 된다면 천하가 셋으로 나뉠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초나라와 한나라는 그를 매우 중시했다.

   당시 초나라와 한나라의 대치는 아주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 한신은 항우가 세운 제나라를 격파한 후에 다른 사람의 권고를 듣고서 유방에게 사자를 파견하여 자신을 제나라의 가왕(假王)에 봉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유방은 매우 분노하였다. 자신의 형세가 매우 위급한 상황인데 한신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 기회에 자신을 협박하여 제나라 왕이 되려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리하여 유방은 한신이 보낸 사자를 혼내주려고 했다. 그러자 그의 모신(謨臣) 장량이 조용히 타일렀다.

   "지금은 한신의 사자를 훈시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한신을 공격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지금 한신이 대왕을 돕는다면 초왕이 멸망할 것이고, 만약 한신이 대왕을 배신하고 초왕을 돕는다면 대왕께서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한신이 사람을 보낸 것은 대왕의 마음을 떠보려는 것일뿐입니다. 그러니 아예 그를 제나라 왕으로 봉해주어서 제나라를 지키도록 하는 편이 낫습니다. 다른 일은 초나라를 멸한 후에 다시 논의해도 됩니다."

   유방은 장량의 말에 따라서 한신의 사자에게 말했다.

   "대장부가 왕이 되려면 진짜 왕이 되어야지, 어찌 가짜 왕(假王)이 되겠느냐!"

   그리하여 이듬해 2월, 장량으로 하여금 옥새가 찍힌 편지를 갖고 제나라로 가서 한신을 제왕으로 봉하도록 했다.

   한왕 유방이 한신을 제왕으로 봉하자 한신은 흔쾌이 그 책봉을 받았다. 후에 초왕 항우가 사자 무섭(武涉)을 한신에게 보내서 초나라에 귀순하도록 권햇으나 한신은 한사코 사절했다.

   괴통은 한신을 설득해서 한나라에 등을 돌리도록 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한신을 만나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요즘 관상술을 배우고 잇는데, 그대의 얼굴을 보면 제후에 불과한 상이지만, 등을 보면 말할 수 없이 고귀한 상입니다."

   한신은 그의 말 속에 뼈가 있는 것을 간파하고 얼른 그를 밀실로 데리고 가서 물었다.

   "금방 한 말은 무슨 뜻인가?"

   괴통이 대답했다.

   "애초에 여러 영웅들이 도처에 일어날 때, 유능한 인재들이 모인 것은 진(秦)나라를 멸하기 위한 것이었죠. 그런데 진을 멸한 후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를 다투느라고 백성들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항우는 팽성에서 군사를 일으켰는데, 남북을 오고 가면서 형양(滎陽)까지 쳐들어가 천하에 그 위세를 자랑했죠. 지금은 광무(廣武)를 에워싸고 있는데, 몇해 동안 아무런 진척도 없는 상태입니다.

   한편, 한왕은 수십만 대군을 거느린 채 산과 강에 의지하여 하루에 몇번씩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아무런 공도 이루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제가 천하의 대세를 살펴보니, 현자가 나서지 않고는 이러한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장군이 이때 초와 한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돕는다면, 그 쪽이 반드시 이기게 됩니다. 다라서 초와 한 두 왕의 목숨은 지금 장군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저의 계책을 말씀드리자면, 어느 쪽도 돕고 있지 않다가 때가 되면 천하를 셋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강성한 제나라 땅을 차지하고 연나라와 조나라를 격파하였으며 수십만 대군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시기가 성숙된 후에 서쪽으로 진군해서 백성들을 위해 명령을 수행한다면, 천하에 어느 누가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장차 천하를 할거해서 제후들에게 분봉하면 모두 제나라를 따를 것이니, 그렇게 되면 패왕의 대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듣건대, 하늘에서 주는 것을 취하지 않으면 천명을 어기는 것이라서 반드시 벌을 받게 되고, 시기가 성숙되었을 때 행하지 않는다면 그때를 잘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라서 화를 입게 된다고 합니다. 장군께서 부디 깊이 생각하셔서 좋은 기회를 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한신은 그의 말을 듣고 한참 후에야 비로서 대답했다.

   "한왕이 나를 매우 후하게 대해주는데, 어찌 이익 때문에 은공을 저버릴 수 있겠소?"

   괴통은 한신이 충의와 은혜에 매인 것을 보고 말했다.

   "월나라의 대부 문종(文鍾)은 망국의 땅에 남아서 구천을 위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렸지만 결국 살해되었으니, 실로 토끼를 잡은 다음에 사냥개를 삶는 격이라고 하겠습니다. 장군의 충성과 신의는 아무래도 월나라의 대부 문종을 넘어서지는 못할 겁니다!

   제가 듣건대, 장수의 용맹이 임금을 놀라게 하면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고, 공로가 천하를 진동하면 초나라든 한나라든 모두 두려움을 느껴 믿지 않으려고 하는 형편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몸을 의탁하겠습니까?"

   한신은 그이 말에 일리가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괴통에게 다시 이렇게 말했다.

   "선생은 다시 말하지 마시오. 내가 깊이 생각해본 후에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소."

   괴통은 한신의 마음이 동한 것을 보자 작별하고 돌아갔다.

   괴통이 돌아간 후에 한신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항우를 위해 일할 때는 관직이 겨우 낭중(郎中)에 지나지 않았고 지위는 집극(執戟)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나의 말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제안한 계책은 하나도 채용되지 못했다. 그러나 한나라에 귀순한 후에 한왕은 나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수만 명에 달하는 군사를 거느리도록 했으며, 입을 것, 먹을 것을 걱정 없도록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또 나를 제왕으로까지 봉하지 않았는가, 내가 이 은공을 배신한다면 반드시 상서롭지 못할 것이다. 또 내가 위표(魏豹)를 생포하고, 조나라와 연나라를 격파하고, 제나라까지 멸하였으니, 이처럼 큰 공로라면 한왕 또한 나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한신은 괴통의 제안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괴통은 한신을 큰 뜻을 품은 자로 여겼기 때문에 며칠 동안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런 소식이 없자 다시 한신을 찾아가서 말했다.

    "장군께서 하루 속히 결정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시기는 오래 가지 않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때 한신은 이미 한왕을 등지지 않기로 결심하였으므로 그 자리에서 대답햇다.

   "선생은 다시는 그러한 말을 하지 마오. 내 공로가 적지 않고 또 한왕에게 충성하고 있으니, 한왕은 반드시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오!"

   이 말을 들은 괴통은 더 이상 권유해보았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물러갔다. 한신과 작별한 괴통은 더 머물러 있다가는 화가 닥칠까 두려워서 미친 자로 가장하여 어디론가 가버렸다.

   기원전 197년 9월, 대상반(代相反)이 스스로 대왕(代王)으로 호칭했다. 한고조 유방은 군사를 거느리고 직접 정벌에 나서기로 했다. 수도를 떠나기 전에 그는 내부의 일은 여후에게, 외부의 일은 소하에게 일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후는 계책으로 한신을 붙잡아서 왕궁 옆에 딸린 종실(鍾室)에서 참수했다.

   죽기 전에 한신은 하늘을 향해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괴통의 말을 듣지 않다가 오히려 여자의 속임수에 떨어졌으니, 이 어찌 천명이 아니겠는가?"

   반란군을 평정하고 돌아온 유방은 한신이 이미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지나간 일이라고 묵인해버렸다.

   그는 한신이 죽기 전에 괴통을 언급했다는 말을 듣고는 특별히 사람을 보내서 괴통의 거처를 찾도록 했다.

 

역사의 시각에서 본다면, 물론 군벌(軍閥)간의 혼전도 반대해야 하고, 한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상황은 전혀 다르다. 다른 것들은 그만두고 단순히 개인의 지혜만 보더라도 유방이나 항우는 한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신이 왕으로 자립해서 세 사람이 천하를 다툰다면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신이 성의(誠意)로 한왕을 대하고 도덕으로 정치를 대한다며느 그 결과는 미리 알 수 있는 것이다.

   한신은 결단성이 부족하고 전체적인 국면을 총괄하지 못했으니, 이 때문에 장수의 재능에 그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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