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지만 결단성이 부족했던 한신

 

중국 역사에서 한신의 이름은 실로 유명하다. 한고조 유방조차 그와 비교하면 손색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관점에서 살필 수있다.

 

첫째는 전기적 색채가 짙은 한신의 일생 때문이다. 그는 일반 백성이었는데, 초기에는 가난에 시달리느라고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우울하게 보냈다. 심지어 참수까지 당할 뻔했는데, 나중에 시운(時運)이 바뀌어서 소하를 만나자 비로소 자신의 재주를 펼칠 수 있었다. 그와 관련된 사건으로 다른 사람의 다리 사이를 기어서 지나갔던 일, 빨래하는 아줌마가 밥을 주던 일, 소하가 달밤에 한신을 쫓아간 일 등은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둘째는 그가 유방의 미움을 사게 되어서 여후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인데, 그 비극적 운명이 사람들로 하여금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그가 망설이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왕으로 자칭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인데, 그 일은 천하에 뜻이는 영웅들의 마음을 태웠기 때문이다.

이상 세가지 이유 중에서 세 번째 이유는 중요한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는 바로 그 이유때문에 다른 두 원인도 비로소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한신은 무엇 때문에 왕이 되지 못하였는가? 무엇 때문에 참수를 당했는가? 무엇때문에 후세의 영웅들에게 그토록 끊임없는 유감을 자아내게 하였는가?

 

   기원전 203년 10월, 유방은 항우를 공격하였다. 한신은 군사를 거느리고 동쪽으로 나아가서 조(趙), 연(燕) 두 나라를 평정하고, 다시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더 진군해서 제나라를 공격했다. 대군이 평원도(平原渡) - 지금의 산동성 서북부 - 에 이르렀을 때, 한신은 한왕(漢王)이 유세객 역이기(酈食其)를 제나라에 보내서 이미 제왕(齊王) 전광(田廣)을 한나라에 귀순하도록 설득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한신은 그 보고를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대부 역이기가 이미 제나라를 설득했다면 내가 무엇을 바라고 가겠는가,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서 한왕을 도와 초왕이나 공격해야겠다.'

    그리하여 그는 군대를 그 자리에 주둔하도록 명하고는 날짜를 택해서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한신의 모사 괴통(蒯通)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만류했다. 한신이 물었다.

   "제왕이 이미 귀순하였다고 해서 내가 돌아가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오?"

   괴통이 답하기를

    "장군은 명령을 받들고 제나라를 공격하러 왔습니다. 이런저런 곡절을 거쳐서 이제 제나라의 국경에 이르렀죠. 지금 한왕이 역이기를 제나라의 사신으로 보내서 입만 벙긋하는 것으로 제나라를 설득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진실인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하물며 한왕께서 아직 장군에게 아무런 명령도 전하지 않은 상황인데, 어찌하여 전해지는 말만 믿고 갑자기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또한 역이기는 일개 유생으로서 세치 혀끝으로 제나라의 70여 개 성곽을 공략했지만, 장군은 수만 명의 정예군을 거느리고도 1년 남짓을 싸운 뒤에야 겨우 조나라 50여 개 성곽을 공략했으니, 장군으로 몇 년을 지낸 자가 일개 유생보다 못한 판국인데 아무런 준비도 없는 틈을 타서 곧장 쳐들어가 제나라를 점령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공은 장군의 것입니다."

   한신이 그의 말을 잠깐 되새겨보니 과연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또한편 제나를 공격하면 역이기를 해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그대의 말에 일리가 있지만, 내가 그렇게 하면 제나라는 반드시 역이기를 죽일 것이오.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하겠소."

   괴통이 그의 말에 웃으면서 답하기를,

   "장군은 실로 은덕을 잘 지키십니다! 장군은 역이기의 입장을 생각해주고 있지만, 제가 알기로 역이기는 스스로 자원해서 제나라 설득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는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하였으니, 그가 먼저 장군을 어긴 것이 아닙니까?"

   한신은  괴통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즉시 군대를 동원하여 평원하(平原河)를 건너 역하(歷下)로 쳐들어갔다. 제나라 군사는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고 있다가 졸지에 패배를 당했다.

   한신은 그 기세를 몰아서 제나라 장수 전해(田解)를 죽이고 화무상(華無傷)을 생포했다. 그리하여 한신은 매우 순조롭게 임치(臨淄)의 성문 앞에 이르렀다.

   제왕 전광은 원래 역이기의 설득으로 한나라에 귀순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나라의 군사가 공격해온다는 소식을 듣자 급히 역이기를 불러서 호통을 쳤다.

   "내가 너의 말을 듣고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했더니, 네 놈이 다른 꿍꿍이를 꾸몄구나, 겉으로는 나를 권고하는 척하면서 군대를 철수하도록 하고, 속으로는 암암리에 한신의 군사를 불러들여서 나의 왕국을 전복하려 하다니, 그 죄는 실로 죽어 마땅하다."

   역이기가 대답하기를,

   "한신이 군사를 거느리고 온 것은 제나라가 귀순한 소식을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이제 대왕께서 저와 함께 사신을 동행시켜서 한신을 찾아가도록 해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한신이 군사 공격을 멈추고 제나라에서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제나라의 재상 전횡(田橫)이 외쳤다.

   "그렇게 되면 네가 벌써 멀리 도망쳤을 텐데, 어찌 또 네놈에게 속겠는가!"

   그리고는 역이기가 변명할 사이도 없이 그를 끓는 기름 가마에 넣겠했다.

   기원전 203년 11월, 한신은 용차(龍且)와 제왕 전광의 목을 베고 제나라를 평정했다. 이때 그는 군사 수십만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 실력은 당시 아주 대단한 것이었다.

   그때의 상황에서 한신이 한나라를 떠나서 초나라에 귀순하면 한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를 도와서 초나라를 공격하면 초나라가 멸망하며, 스스로 왕이 된다면 천하가 셋으로 나뉠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초나라와 한나라는 그를 매우 중시했다.

   당시 초나라와 한나라의 대치는 아주 심각한 상태에 처해 있었다. 한신은 항우가 세운 제나라를 격파한 후에 다른 사람의 권고를 듣고서 유방에게 사자를 파견하여 자신을 제나라의 가왕(假王)에 봉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유방은 매우 분노하였다. 자신의 형세가 매우 위급한 상황인데 한신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 기회에 자신을 협박하여 제나라 왕이 되려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리하여 유방은 한신이 보낸 사자를 혼내주려고 했다. 그러자 그의 모신(謨臣) 장량이 조용히 타일렀다.

   "지금은 한신의 사자를 훈시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한신을 공격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지금 한신이 대왕을 돕는다면 초왕이 멸망할 것이고, 만약 한신이 대왕을 배신하고 초왕을 돕는다면 대왕께서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한신이 사람을 보낸 것은 대왕의 마음을 떠보려는 것일뿐입니다. 그러니 아예 그를 제나라 왕으로 봉해주어서 제나라를 지키도록 하는 편이 낫습니다. 다른 일은 초나라를 멸한 후에 다시 논의해도 됩니다."

   유방은 장량의 말에 따라서 한신의 사자에게 말했다.

   "대장부가 왕이 되려면 진짜 왕이 되어야지, 어찌 가짜 왕(假王)이 되겠느냐!"

   그리하여 이듬해 2월, 장량으로 하여금 옥새가 찍힌 편지를 갖고 제나라로 가서 한신을 제왕으로 봉하도록 했다.

   한왕 유방이 한신을 제왕으로 봉하자 한신은 흔쾌이 그 책봉을 받았다. 후에 초왕 항우가 사자 무섭(武涉)을 한신에게 보내서 초나라에 귀순하도록 권햇으나 한신은 한사코 사절했다.

   괴통은 한신을 설득해서 한나라에 등을 돌리도록 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한신을 만나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요즘 관상술을 배우고 잇는데, 그대의 얼굴을 보면 제후에 불과한 상이지만, 등을 보면 말할 수 없이 고귀한 상입니다."

   한신은 그의 말 속에 뼈가 있는 것을 간파하고 얼른 그를 밀실로 데리고 가서 물었다.

   "금방 한 말은 무슨 뜻인가?"

   괴통이 대답했다.

   "애초에 여러 영웅들이 도처에 일어날 때, 유능한 인재들이 모인 것은 진(秦)나라를 멸하기 위한 것이었죠. 그런데 진을 멸한 후 초나라와 한나라가 천하를 다투느라고 백성들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항우는 팽성에서 군사를 일으켰는데, 남북을 오고 가면서 형양(滎陽)까지 쳐들어가 천하에 그 위세를 자랑했죠. 지금은 광무(廣武)를 에워싸고 있는데, 몇해 동안 아무런 진척도 없는 상태입니다.

   한편, 한왕은 수십만 대군을 거느린 채 산과 강에 의지하여 하루에 몇번씩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아무런 공도 이루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제가 천하의 대세를 살펴보니, 현자가 나서지 않고는 이러한 싸움이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장군이 이때 초와 한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돕는다면, 그 쪽이 반드시 이기게 됩니다. 다라서 초와 한 두 왕의 목숨은 지금 장군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저의 계책을 말씀드리자면, 어느 쪽도 돕고 있지 않다가 때가 되면 천하를 셋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강성한 제나라 땅을 차지하고 연나라와 조나라를 격파하였으며 수십만 대군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시기가 성숙된 후에 서쪽으로 진군해서 백성들을 위해 명령을 수행한다면, 천하에 어느 누가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장차 천하를 할거해서 제후들에게 분봉하면 모두 제나라를 따를 것이니, 그렇게 되면 패왕의 대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듣건대, 하늘에서 주는 것을 취하지 않으면 천명을 어기는 것이라서 반드시 벌을 받게 되고, 시기가 성숙되었을 때 행하지 않는다면 그때를 잘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라서 화를 입게 된다고 합니다. 장군께서 부디 깊이 생각하셔서 좋은 기회를 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한신은 그의 말을 듣고 한참 후에야 비로서 대답했다.

   "한왕이 나를 매우 후하게 대해주는데, 어찌 이익 때문에 은공을 저버릴 수 있겠소?"

   괴통은 한신이 충의와 은혜에 매인 것을 보고 말했다.

   "월나라의 대부 문종(文鍾)은 망국의 땅에 남아서 구천을 위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렸지만 결국 살해되었으니, 실로 토끼를 잡은 다음에 사냥개를 삶는 격이라고 하겠습니다. 장군의 충성과 신의는 아무래도 월나라의 대부 문종을 넘어서지는 못할 겁니다!

   제가 듣건대, 장수의 용맹이 임금을 놀라게 하면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고, 공로가 천하를 진동하면 초나라든 한나라든 모두 두려움을 느껴 믿지 않으려고 하는 형편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몸을 의탁하겠습니까?"

   한신은 그이 말에 일리가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하여 괴통에게 다시 이렇게 말했다.

   "선생은 다시 말하지 마시오. 내가 깊이 생각해본 후에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소."

   괴통은 한신의 마음이 동한 것을 보자 작별하고 돌아갔다.

   괴통이 돌아간 후에 한신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항우를 위해 일할 때는 관직이 겨우 낭중(郎中)에 지나지 않았고 지위는 집극(執戟)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나의 말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제안한 계책은 하나도 채용되지 못했다. 그러나 한나라에 귀순한 후에 한왕은 나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수만 명에 달하는 군사를 거느리도록 했으며, 입을 것, 먹을 것을 걱정 없도록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또 나를 제왕으로까지 봉하지 않았는가, 내가 이 은공을 배신한다면 반드시 상서롭지 못할 것이다. 또 내가 위표(魏豹)를 생포하고, 조나라와 연나라를 격파하고, 제나라까지 멸하였으니, 이처럼 큰 공로라면 한왕 또한 나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한신은 괴통의 제안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괴통은 한신을 큰 뜻을 품은 자로 여겼기 때문에 며칠 동안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런 소식이 없자 다시 한신을 찾아가서 말했다.

    "장군께서 하루 속히 결정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시기는 오래 가지 않고,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때 한신은 이미 한왕을 등지지 않기로 결심하였으므로 그 자리에서 대답햇다.

   "선생은 다시는 그러한 말을 하지 마오. 내 공로가 적지 않고 또 한왕에게 충성하고 있으니, 한왕은 반드시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오!"

   이 말을 들은 괴통은 더 이상 권유해보았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물러갔다. 한신과 작별한 괴통은 더 머물러 있다가는 화가 닥칠까 두려워서 미친 자로 가장하여 어디론가 가버렸다.

   기원전 197년 9월, 대상반(代相反)이 스스로 대왕(代王)으로 호칭했다. 한고조 유방은 군사를 거느리고 직접 정벌에 나서기로 했다. 수도를 떠나기 전에 그는 내부의 일은 여후에게, 외부의 일은 소하에게 일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후는 계책으로 한신을 붙잡아서 왕궁 옆에 딸린 종실(鍾室)에서 참수했다.

   죽기 전에 한신은 하늘을 향해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괴통의 말을 듣지 않다가 오히려 여자의 속임수에 떨어졌으니, 이 어찌 천명이 아니겠는가?"

   반란군을 평정하고 돌아온 유방은 한신이 이미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지나간 일이라고 묵인해버렸다.

   그는 한신이 죽기 전에 괴통을 언급했다는 말을 듣고는 특별히 사람을 보내서 괴통의 거처를 찾도록 했다.

 

역사의 시각에서 본다면, 물론 군벌(軍閥)간의 혼전도 반대해야 하고, 한신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의 관점에서 볼 때 상황은 전혀 다르다. 다른 것들은 그만두고 단순히 개인의 지혜만 보더라도 유방이나 항우는 한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신이 왕으로 자립해서 세 사람이 천하를 다툰다면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신이 성의(誠意)로 한왕을 대하고 도덕으로 정치를 대한다며느 그 결과는 미리 알 수 있는 것이다.

   한신은 결단성이 부족하고 전체적인 국면을 총괄하지 못했으니, 이 때문에 장수의 재능에 그친 것이 아니겠는가!

  1. 홍현식 2017.04.21 11:02

    psunicon@naver.com
    초대장 부탁합니다.
    블로그는 열씸해볼려는데
    티스토리가 좋다고 추천하더라구요....
    불타는 맘으로 할려합니다.
    초대장 꼭 부탁합니다.

  2. 2017.06.15 14:30

    비밀댓글입니다

  3. 희망빛 2017.10.16 08:53

    한신 아쉽네요 결단력의 중요성을 느낍니다

    • BlogIcon 미리수 현쭌아빠 2017.10.24 16:54 신고

      결과론적이지만 한신이 결단을 내렸으면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을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신은 자기가 영리하고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수 도 있고요.
      그래서 유방이 자기를 어떻게 하지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4. 2018.01.11 09:53

    비밀댓글입니다

  5. 한석준 2018.03.17 01:04

    안녕하세요 글 잘봤습니다.
    죄송스럽지만 제가 과제로 인해서 티스토리에 가입을 해야하는데
    초대장 한 번 받을 수 있을까요. speld94@naver.com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유방

출처 : 위키디피아

 

 

장군의 재능을 갖춘자, 원수의 재능을 갖춘자, 패왕의 재능을 갖춘자, 이 세 종류는 성격이 같지 않는 재능이다.

어떤 자가 장군의 재능을 갖춘 자인가?

장군의 재능을 갖춘 자는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갈 수 있고,

앞으로 나가면 승리하고 퇴각할 때는 질서가 있으며

아울러 책략에도 능해야 한다.


어떤 자가 원수의 재능을 갖춘 자인가?

원수의 재능을 갖춘 자는 뭇 장군을 통솔해서 그들을 지휘 할 수 있어야 하며,

마음속에 전체적인 국면을 담아서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하며,

국난에 처했을 때 독자적으로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자가 패왕의 재능을 갖춘 자인가?

패왕의 재능을 갖춘 자는 시사를 꿰뚫어 보고 미래를 통찰 할 수 있어야 하며,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고 독특한 안목이 있어야 하며, 의연하고 굳셀 뿐만 아니라 인재를 발견하고 등용할 줄 알아야 한다.

 

 

 

      젊은 시절 유방(劉邦)은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기보다는 한량에 가까웠다. 아버지, 형과 함께 농사일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늘 건들거리면서 놀기를 일삼았다. 아버지가 여러 번 권고했지만 끝내 그의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특히 유방(劉邦)의 형수는, 매일 좋은 것만 골라먹고 일은 조금도 하지 않는데다가 가산만 탕진하는 이 시동생을 탐탁지 않게 여겨서 불평이 대단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유방(劉邦)의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따로 살림을 차리도록 하고 자신이 유방(劉邦)을 데리고 있었다.

유방(劉邦)은 스무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못된 습관을 고치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나무랄 정도였다.

"너는 정말 건달이로구나! 어찌하여 형을 본받지 못하느냐? 그 아이는 살림을 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땅까지 사놓았다. 너는 언제 땅도 사고 집도 지겠느냐?"

   하지만 유방(劉邦)은 여전히 정신차리지 못했으며, 심지어 늘 건달 친구들과 함께 형 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갔다. 그의 형수는 화가 나서 유방(劉邦)을 꾸짖었으나 유방(劉邦)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한번은 유방(劉邦)이 또 친구들과 함께 밥을 얻어먹으러 갔는데, 형수는 꾀가 나서 주방에 들어가 밥주걱으로 솥을 긁는 소리를 요란하게 냈다.그 소리를 들은 유방(劉邦)은 이미 식사때가 지난 것으로 생각하고 친구들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주방에 들어가보니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유방(劉邦)은 그때서야 형수의 장난인 줄 알고는 장탄식을 하면서 다시는 형 집을 찾지 않았다.

 

 

항우(項羽)와 천하를 다툴 때 유방(劉邦)은 팽성에서 크게 패아여 홀로 도망가게 되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두 자식도 잃어버린 상태였다. 유방(劉邦)은 며칠 동안 도주하다가 부하 하후영을 만나자 마음이 적이 놓였다. 다시 얼마 후 피난 가는 사람들 속에서 잃어버렸던 두 자식을 찾게 되자 더욱 마음의 위안을 느꼇다. 그런데 초나라 장수 계포의 추격병이 바로 들이닥칠 줄이야!

   유방(劉邦)은 황급히 도망가면서 수레가 너무 무거워 속도가 느리다고 나무라더니 두 아이를 수레에서 밀어내려고 했다. 하후영은  그 광경을 보고 얼른 그들을 수레에 도로 태웠다. 이렇게 하기를 세번을 반복하자, 유방(劉邦)이 그에게 호통을 쳤다.

"내가 지금 위급한데 어찌 두 자식까지 돌본단 말이냐! 스스로 목숨을 버리란 말이냐?"

하후영이 대답했다.

"이 아이들은 대왕의 친 혈육입니다. 어찌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유방(劉邦)은 발끈 화를 내면서 검을 빼들고 하후영을 내리쳤다. 하후영은 그 칼날을 피하는 한편 이번에는 아이들을 수레에 태우지 못하고 겨드랑이에 낀 채 말을 타고 유방(劉邦)을 따라서 도주했다.

 

 

   또 한번은 초나라와 한나라가 대치하고 있을 때, 항우(項羽)가 유방(劉邦)의 부친을 사로잡고서 유방(劉邦)을 협박한 적이 있었다. 양군이 대치하는 가운데 항우(項羽)는 유방(劉邦)의 부친을 진영 앞에 내세우고서 유방(劉邦)에게 말했다.

"만약 네가 철수하지 않는다면, 너의 부친을 이 자리에서 끓는 물에 삶겠다."

그러자 유방(劉邦)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 두 사람이 의형제를 맺었으니, 나의 아버지가 바로 너의 아버지이고 너의 아버지가 또한 나의 아버지가 아니겠느냐! 만약 내 아버지를 삶았다면 나에게 고기 국물이라도 좀 보내다오."

항우(項羽)는 도저히 유방(劉邦)을 협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결국 유방(劉邦)의 부친을 석방하고 말았다.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해서 한왕조를 세운 후였다. 한번은 신하들과 함께 모인 연회석에서 유방(劉邦)이 자신의 부친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버지, 나와 형님 가운데 누구의 재산이 더 많을까요?"

하지만 그의 부친은 소인이 득세한 꼴을 보자 속이 뒤틀린 나머지 '흥'하는 콧방귀만 남긴 채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이처럼 유방(劉邦)은 건달에 무뢰한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람과 견줄 수 없는 장점이 있는데, 즉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수용하고, 장수들을 훌륭히 단합시키며, 참을 줄 알고, 인재를 등용하는 재능이 있었다.

 

 

 

  한나라 왕조가 개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떄였다.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을 비롯해 다른 대신들과 함꼐 있는 자리에서 여러 장수들의 재능을 논하게 되었다. 유방(劉邦)이 한신(韓信)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대가 보기에 내가 백만 대군을 거느릴 수 있겠는가?"

한신(韓信)이 대답했다.

"거느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10만 대군을 거느릴 수 있는가?

"역시 거느릴 수 없습니다."

유방(劉邦)이 화가 치밀어서 물었다.

"그대가 보건대, 내가 몇명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겠는가?"

"1만명을 거느릴 수만 있어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렇가면 자네는 몇 명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는가?"

한신(韓信)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저야 물론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유방(劉邦)은 이상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왜 내가 황제가 되고 자네는 장군밖에 되지 못했는가?"

"폐하께서는 군대를 잘 거느리지는 못하지만, 장군들을 잘 이끌 수 있기때문이죠."

실로 유방(劉邦)은 '장막 안에서 천리 밖의 승리를 결정하는' 면에서 장량만 못하고, 양식과 말 먹일 풀을 운반해서 보급을 보장하며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서 소하에 미치지 못하며, 전쟁터에 나가서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적을 무찌르는 일에서 한신(韓信)을 따르지 못한다. 그러나 유방(劉邦)의 장점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해서 그들 각자의 능력과 장점을 자신을 위해 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유방(劉邦)은 그야 말로 '장수들을 잘 이끄는 데' 능수능란했으며, 한신(韓信)은 유방(劉邦)의 사람 됨됨이를 알면서도 그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항우(項羽)가 패배한 후 그의 부장 종리매와 계포는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유방(劉邦)은 황제가 된 후 즉시 전국에 그들을 수배하는 현상 포고문을 내걸었다. 전국을 샅샅이 뒤지는 수색이 벌어지자, 종리매는 도망갈 곳이 없어서 고향 친구인 한신(韓信)을 찾아갔다. 한신(韓信)은 옛정을 생각해서 그를 초왕부에 숨겨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누군가가 이일을 유방(劉邦)에게 밀고하였고 그 사연을 들은 유방(劉邦)은 아연실색했다. 그는 줄곧 한신(韓信)을 경계하고 있었는데, 특히 한신(韓信)이  종리매를 숨겨주었다는 보고를 받자, 유방(劉邦)은 그에게 모반의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즉시 조서를 내려 종리매를 수도로 보내라고 한신(韓信)에게 명했다. 한신(韓信)은 조서를 받았으나 종리매를 차마 보내지 못하고 종리매가 이미 떠났다고 보고했다. 유방(劉邦)은 그 보고를 접하였지만 의혹이 가시지  않아서 사람을 파견하여 암암리에 감시하도록 했다. 한신(韓信)은 자신의 영지에 있을 때는 늘 군마를 데리고 출입하였는 데 그 위풍이 대단했다. 감시하던 자는 이런 상황을 유방(劉邦)에게게 은밀히 보고하면서 한신(韓信)이 모반할 마음이 있는것 같다고 했다.

유방(劉邦)은 즉시 장수들을 모아놓고 한신(韓信)을 대처할 방책을 강구하도록 했다. 모든 사람이 한신(韓信)을 징벌하지면서 유방(劉邦)에게 말했다.

"한신(韓信)이 난을 일으키면 폐하계서는 군사를 일으켜 징벌해야 합니다."

유방(劉邦)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늦게온 진평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물었다. 진평은 한신(韓信)의 모반에 대하여 반신반의했지만 유방(劉邦)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가 물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유방(劉邦)이 대답했다.

"군사를 일으켜서 징벌하자고 하오."

"페하께서는 한신(韓信)의 모반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밀고한 사람이 있었네."

"그 밀고한 사람 외에 누가 또 한신(韓信)의 모반을 말합니까?"

"아직은 없네."

"한신(韓信)은 이러한 밀고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한신(韓信)은 모르고 있네."

"지금 폐하께서 보유한 병사로 한신(韓信)의 초병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이 없네."

"폐하의 장수들 중에서 한신(韓信)과 대적할 수 있는 자가 있습니까?"

"없네."

"지금 군사도 한신(韓信)의 초나라 군사보다 못하고, 장수 또한 한신(韓信)과 대적할 수 없는데, 만약 군대를 동원하여 징벌에 나선다면 한신(韓信)에게 모반할 마음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모반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유방(劉邦)은 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책을 다그쳐 물었다. 진평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신에게 계책이 한 있는데 폐하께서 가늠해보십시오. 옛날에는 천자가 순행을 나서면 반드시 제후들을 만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남쪽에 운몽택이란 유명한 명승지가 있다고 하니, 폐하께서는 운몽으로 유행을 떠난다고 하면서 천하 제후들을 진 땅을 불러들이십시오. 진 땅은 초의 서쪽 변경과 인접하여 있으니, 초왕 한신(韓信)은 폐하가 왕림하신다는 소문을 들으면 반드시 뵈러 올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그를 접견하는 자리에 무장한 복병을 매복해두었다가 그를 잡으면, 이 어찌 쉽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방(劉邦)은 진평의 계책에 따라서 즉시 사자를 파견하여 명했다.

"운몽택으로 유행을 가니 제후들은 모두 진 땅에 모이도록 하시오."

한신(韓信)은 유방(劉邦)의 명령을 받자 당연히 그 의도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두번이나 유방(劉邦)에게 병권을 박탈당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유방(劉邦)의 의심 많은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떄문에 매사에 각별히 조심했다. 이번에 유방(劉邦)이 갑자기 운몽택을 유행한다고 하는데, 만약 가지 않으면 임금과 신하의 예의에 어긋나게 되고, 만약 가서 만난다면 의외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도 없는 처지였다. 한신(韓信)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부하들 중에서 이렇게 말하는 자가 있었다.

"대왕께서 종리매를 숨겨주느라고 임금의 명을 위반한 것 외에는 아무런 과오도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종리매의 목을 베어서 그의 수급을 폐하에게 바친다면, 폐하께서는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대왕께서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한신(韓信)은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리매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난처한 입장을 쓸적 내비쳤다. 그이 말을 들은 종리매가 말했다.

"한이 초를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와 당신이 연합해서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기 때문이오. 만약 내가 오늘 죽는다면, 내일은 당신이 반드시 나와 같은 운명을 겪을 것이오."

그래도 한신(韓信)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종리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면서 한신(韓信)을 꾸짖었다.

"너는 큰 일을 이룰 군자가 아니다. 내가 너를 잘못보았구나!"

그리고는 검을 뺴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한신(韓信)은 종리매가 죽은 것을 보자 그의 수급을 취한 뒤에 진 땅으로 유방(劉邦)을 알현하러 갔다.

유방(劉邦)은 사방으로  사신을 파견하고 나서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 낙양을 떠나 곧바로 진 땅으로 향하였다. 한신(韓信)은 진 땅에서 며칠을 기다렸다가 유방(劉邦)을 만나자 즉시 종리매의 수급을 바쳤다. 그런데 갑자기 유방(劉邦)이 호통을 쳤다.

"한신(韓信)을 잡아라."

그러자 행렬에서 많은 무사들이 뛰어나와서 한신(韓信)을 꽁꽁 묶었다.

한신(韓信)은 별로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과연 사람들의 말대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고, 높이 나는 새가 보이지 않으면 활을 거두며, 적국을 격파한 후에는 모신도 죽이는 겪이로구나. 천하의 임자가 정해졌으니, 나도 마땅히 죽을 떄가 되었었다."

유방(劉邦)은 그의 말을 듣고 말했다.

"네가 모반한다는 밀고가 있었으므로 너를 체포하는 것이다."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을 수레 뒤에 실은 뒤에는 운몽택 유람이고 뭐고 모두 집어치웠다. 제후들에게도 오지 않아도 된다는 기별을 띄우고는 곧바로 낙양으로 돌와왔다.

  낙양으로 돌아온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에게 과오보다는 공로가 훨씬 많았고, 게다가 모반에 대한 명백한 증거도 없었기 떄문에 그를 석방하면서 초왕에서 회음후로 지위를 낮추었다.

과거 초나라와 한나라가 전쟁을 할 떄 한신(韓信)이  항우(項羽)를 도왔더라면 항우(項羽)가 천하를 통일하게 되고, 한신(韓信)이 유방(劉邦)을 돕는다면 유방(劉邦)이 천하를 장악하게되며, 만약 한신(韓信)이 유방(劉邦)을 등지고 스스로 세력을 확장했다면 항우(項羽), 유방(劉邦)과 함께 삼국 정립의 형세를 이루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신(韓信)에게는 당시 여러 차례 자립할 기회가 있었고, 뿐만 아니라 한신(韓信)에게는 당시 어려 차례 자립할 기회가 있었고, 주변의 사람들도 그에게 스스로 왕이 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모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한나라가 건립된 후에 한신(韓信)은 왕으로 책봉받기는 했지만, 내심으로는 섭섭함이 없지 않아서 '마음속에 원망을 품고' 있었다.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의 그런 면을 예견했기 때문에 먼저 선수를 쳐서 그의 작위를 삭감하고, 다시 그가 갖고 있는 권력의 대부분을 해제하면서 그를 실제로 도읍에 연금했다. 얼마 후에 유방(劉邦)의 아내 여치가 소하와 은밀히 모의하여 한신(韓信)을 조정으로 유인한 후에 모반이라는 죄명으로 그를 포박하고 나서 무사를 시켜 그를 죽였다.

 

한신(韓信)은 장수의 재능을 갖춘 자이기는 하지만 패왕이 될자는 아니니, 이는 의심할 나위도 없는 사실이다. 유방(劉邦)은 '장수를 통솔하는 데' 매우 능해서 패왕이 될만한 자이지만, 다른 한편 건달이기도 했다.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을 대할 때 덕이 아니라 술수로 통제하였다. 전통 사회에서 술수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린 자는 쉽게 업적을 쌓았으나, 덕으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린자는 오히려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누가 인심을 얻어야 비로소 천하를 얻는다고 했던가?

건달, 무뢰한도 천하를 얻지 않았는가!

건달, 무뢰한은 무엇에 기대어서 천하를 얻었을까?

인재를 얻었기 대문에 그러한 성공이 가능했다!

 

 

대선 정국에 맞물려 다시 한번 생각하게하는 글이어서 올려봅니다.

지난 대선과 그리고 이번 대선 현명한 생각을 해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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