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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를 통솔하는 자는 장수이고, 장수를 통솔하는 자는 임금이다.

 

유방

출처 : 위키디피아

 

 

장군의 재능을 갖춘자, 원수의 재능을 갖춘자, 패왕의 재능을 갖춘자, 이 세 종류는 성격이 같지 않는 재능이다.

어떤 자가 장군의 재능을 갖춘 자인가?

장군의 재능을 갖춘 자는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갈 수 있고,

앞으로 나가면 승리하고 퇴각할 때는 질서가 있으며

아울러 책략에도 능해야 한다.


어떤 자가 원수의 재능을 갖춘 자인가?

원수의 재능을 갖춘 자는 뭇 장군을 통솔해서 그들을 지휘 할 수 있어야 하며,

마음속에 전체적인 국면을 담아서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하며,

국난에 처했을 때 독자적으로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자가 패왕의 재능을 갖춘 자인가?

패왕의 재능을 갖춘 자는 시사를 꿰뚫어 보고 미래를 통찰 할 수 있어야 하며,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고 독특한 안목이 있어야 하며, 의연하고 굳셀 뿐만 아니라 인재를 발견하고 등용할 줄 알아야 한다.

 

 

 

      젊은 시절 유방(劉邦)은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기보다는 한량에 가까웠다. 아버지, 형과 함께 농사일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늘 건들거리면서 놀기를 일삼았다. 아버지가 여러 번 권고했지만 끝내 그의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특히 유방(劉邦)의 형수는, 매일 좋은 것만 골라먹고 일은 조금도 하지 않는데다가 가산만 탕진하는 이 시동생을 탐탁지 않게 여겨서 불평이 대단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유방(劉邦)의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따로 살림을 차리도록 하고 자신이 유방(劉邦)을 데리고 있었다.

유방(劉邦)은 스무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못된 습관을 고치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나무랄 정도였다.

"너는 정말 건달이로구나! 어찌하여 형을 본받지 못하느냐? 그 아이는 살림을 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땅까지 사놓았다. 너는 언제 땅도 사고 집도 지겠느냐?"

   하지만 유방(劉邦)은 여전히 정신차리지 못했으며, 심지어 늘 건달 친구들과 함께 형 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갔다. 그의 형수는 화가 나서 유방(劉邦)을 꾸짖었으나 유방(劉邦)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한번은 유방(劉邦)이 또 친구들과 함께 밥을 얻어먹으러 갔는데, 형수는 꾀가 나서 주방에 들어가 밥주걱으로 솥을 긁는 소리를 요란하게 냈다.그 소리를 들은 유방(劉邦)은 이미 식사때가 지난 것으로 생각하고 친구들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주방에 들어가보니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유방(劉邦)은 그때서야 형수의 장난인 줄 알고는 장탄식을 하면서 다시는 형 집을 찾지 않았다.

 

 

항우(項羽)와 천하를 다툴 때 유방(劉邦)은 팽성에서 크게 패아여 홀로 도망가게 되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두 자식도 잃어버린 상태였다. 유방(劉邦)은 며칠 동안 도주하다가 부하 하후영을 만나자 마음이 적이 놓였다. 다시 얼마 후 피난 가는 사람들 속에서 잃어버렸던 두 자식을 찾게 되자 더욱 마음의 위안을 느꼇다. 그런데 초나라 장수 계포의 추격병이 바로 들이닥칠 줄이야!

   유방(劉邦)은 황급히 도망가면서 수레가 너무 무거워 속도가 느리다고 나무라더니 두 아이를 수레에서 밀어내려고 했다. 하후영은  그 광경을 보고 얼른 그들을 수레에 도로 태웠다. 이렇게 하기를 세번을 반복하자, 유방(劉邦)이 그에게 호통을 쳤다.

"내가 지금 위급한데 어찌 두 자식까지 돌본단 말이냐! 스스로 목숨을 버리란 말이냐?"

하후영이 대답했다.

"이 아이들은 대왕의 친 혈육입니다. 어찌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유방(劉邦)은 발끈 화를 내면서 검을 빼들고 하후영을 내리쳤다. 하후영은 그 칼날을 피하는 한편 이번에는 아이들을 수레에 태우지 못하고 겨드랑이에 낀 채 말을 타고 유방(劉邦)을 따라서 도주했다.

 

 

   또 한번은 초나라와 한나라가 대치하고 있을 때, 항우(項羽)가 유방(劉邦)의 부친을 사로잡고서 유방(劉邦)을 협박한 적이 있었다. 양군이 대치하는 가운데 항우(項羽)는 유방(劉邦)의 부친을 진영 앞에 내세우고서 유방(劉邦)에게 말했다.

"만약 네가 철수하지 않는다면, 너의 부친을 이 자리에서 끓는 물에 삶겠다."

그러자 유방(劉邦)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 두 사람이 의형제를 맺었으니, 나의 아버지가 바로 너의 아버지이고 너의 아버지가 또한 나의 아버지가 아니겠느냐! 만약 내 아버지를 삶았다면 나에게 고기 국물이라도 좀 보내다오."

항우(項羽)는 도저히 유방(劉邦)을 협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결국 유방(劉邦)의 부친을 석방하고 말았다.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해서 한왕조를 세운 후였다. 한번은 신하들과 함께 모인 연회석에서 유방(劉邦)이 자신의 부친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버지, 나와 형님 가운데 누구의 재산이 더 많을까요?"

하지만 그의 부친은 소인이 득세한 꼴을 보자 속이 뒤틀린 나머지 '흥'하는 콧방귀만 남긴 채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이처럼 유방(劉邦)은 건달에 무뢰한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람과 견줄 수 없는 장점이 있는데, 즉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수용하고, 장수들을 훌륭히 단합시키며, 참을 줄 알고, 인재를 등용하는 재능이 있었다.

 

 

 

  한나라 왕조가 개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떄였다.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을 비롯해 다른 대신들과 함꼐 있는 자리에서 여러 장수들의 재능을 논하게 되었다. 유방(劉邦)이 한신(韓信)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대가 보기에 내가 백만 대군을 거느릴 수 있겠는가?"

한신(韓信)이 대답했다.

"거느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10만 대군을 거느릴 수 있는가?

"역시 거느릴 수 없습니다."

유방(劉邦)이 화가 치밀어서 물었다.

"그대가 보건대, 내가 몇명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겠는가?"

"1만명을 거느릴 수만 있어도 대단한 것입니다."

"그렇가면 자네는 몇 명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는가?"

한신(韓信)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저야 물론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유방(劉邦)은 이상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왜 내가 황제가 되고 자네는 장군밖에 되지 못했는가?"

"폐하께서는 군대를 잘 거느리지는 못하지만, 장군들을 잘 이끌 수 있기때문이죠."

실로 유방(劉邦)은 '장막 안에서 천리 밖의 승리를 결정하는' 면에서 장량만 못하고, 양식과 말 먹일 풀을 운반해서 보급을 보장하며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서 소하에 미치지 못하며, 전쟁터에 나가서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적을 무찌르는 일에서 한신(韓信)을 따르지 못한다. 그러나 유방(劉邦)의 장점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해서 그들 각자의 능력과 장점을 자신을 위해 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유방(劉邦)은 그야 말로 '장수들을 잘 이끄는 데' 능수능란했으며, 한신(韓信)은 유방(劉邦)의 사람 됨됨이를 알면서도 그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항우(項羽)가 패배한 후 그의 부장 종리매와 계포는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유방(劉邦)은 황제가 된 후 즉시 전국에 그들을 수배하는 현상 포고문을 내걸었다. 전국을 샅샅이 뒤지는 수색이 벌어지자, 종리매는 도망갈 곳이 없어서 고향 친구인 한신(韓信)을 찾아갔다. 한신(韓信)은 옛정을 생각해서 그를 초왕부에 숨겨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누군가가 이일을 유방(劉邦)에게 밀고하였고 그 사연을 들은 유방(劉邦)은 아연실색했다. 그는 줄곧 한신(韓信)을 경계하고 있었는데, 특히 한신(韓信)이  종리매를 숨겨주었다는 보고를 받자, 유방(劉邦)은 그에게 모반의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즉시 조서를 내려 종리매를 수도로 보내라고 한신(韓信)에게 명했다. 한신(韓信)은 조서를 받았으나 종리매를 차마 보내지 못하고 종리매가 이미 떠났다고 보고했다. 유방(劉邦)은 그 보고를 접하였지만 의혹이 가시지  않아서 사람을 파견하여 암암리에 감시하도록 했다. 한신(韓信)은 자신의 영지에 있을 때는 늘 군마를 데리고 출입하였는 데 그 위풍이 대단했다. 감시하던 자는 이런 상황을 유방(劉邦)에게게 은밀히 보고하면서 한신(韓信)이 모반할 마음이 있는것 같다고 했다.

유방(劉邦)은 즉시 장수들을 모아놓고 한신(韓信)을 대처할 방책을 강구하도록 했다. 모든 사람이 한신(韓信)을 징벌하지면서 유방(劉邦)에게 말했다.

"한신(韓信)이 난을 일으키면 폐하계서는 군사를 일으켜 징벌해야 합니다."

유방(劉邦)은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늦게온 진평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물었다. 진평은 한신(韓信)의 모반에 대하여 반신반의했지만 유방(劉邦)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가 물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유방(劉邦)이 대답했다.

"군사를 일으켜서 징벌하자고 하오."

"페하께서는 한신(韓信)의 모반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밀고한 사람이 있었네."

"그 밀고한 사람 외에 누가 또 한신(韓信)의 모반을 말합니까?"

"아직은 없네."

"한신(韓信)은 이러한 밀고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한신(韓信)은 모르고 있네."

"지금 폐하께서 보유한 병사로 한신(韓信)의 초병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이 없네."

"폐하의 장수들 중에서 한신(韓信)과 대적할 수 있는 자가 있습니까?"

"없네."

"지금 군사도 한신(韓信)의 초나라 군사보다 못하고, 장수 또한 한신(韓信)과 대적할 수 없는데, 만약 군대를 동원하여 징벌에 나선다면 한신(韓信)에게 모반할 마음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모반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유방(劉邦)은 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책을 다그쳐 물었다. 진평이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신에게 계책이 한 있는데 폐하께서 가늠해보십시오. 옛날에는 천자가 순행을 나서면 반드시 제후들을 만나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남쪽에 운몽택이란 유명한 명승지가 있다고 하니, 폐하께서는 운몽으로 유행을 떠난다고 하면서 천하 제후들을 진 땅을 불러들이십시오. 진 땅은 초의 서쪽 변경과 인접하여 있으니, 초왕 한신(韓信)은 폐하가 왕림하신다는 소문을 들으면 반드시 뵈러 올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그를 접견하는 자리에 무장한 복병을 매복해두었다가 그를 잡으면, 이 어찌 쉽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방(劉邦)은 진평의 계책에 따라서 즉시 사자를 파견하여 명했다.

"운몽택으로 유행을 가니 제후들은 모두 진 땅에 모이도록 하시오."

한신(韓信)은 유방(劉邦)의 명령을 받자 당연히 그 의도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두번이나 유방(劉邦)에게 병권을 박탈당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유방(劉邦)의 의심 많은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떄문에 매사에 각별히 조심했다. 이번에 유방(劉邦)이 갑자기 운몽택을 유행한다고 하는데, 만약 가지 않으면 임금과 신하의 예의에 어긋나게 되고, 만약 가서 만난다면 의외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도 없는 처지였다. 한신(韓信)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부하들 중에서 이렇게 말하는 자가 있었다.

"대왕께서 종리매를 숨겨주느라고 임금의 명을 위반한 것 외에는 아무런 과오도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종리매의 목을 베어서 그의 수급을 폐하에게 바친다면, 폐하께서는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대왕께서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한신(韓信)은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리매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난처한 입장을 쓸적 내비쳤다. 그이 말을 들은 종리매가 말했다.

"한이 초를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와 당신이 연합해서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기 때문이오. 만약 내가 오늘 죽는다면, 내일은 당신이 반드시 나와 같은 운명을 겪을 것이오."

그래도 한신(韓信)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종리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면서 한신(韓信)을 꾸짖었다.

"너는 큰 일을 이룰 군자가 아니다. 내가 너를 잘못보았구나!"

그리고는 검을 뺴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한신(韓信)은 종리매가 죽은 것을 보자 그의 수급을 취한 뒤에 진 땅으로 유방(劉邦)을 알현하러 갔다.

유방(劉邦)은 사방으로  사신을 파견하고 나서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 낙양을 떠나 곧바로 진 땅으로 향하였다. 한신(韓信)은 진 땅에서 며칠을 기다렸다가 유방(劉邦)을 만나자 즉시 종리매의 수급을 바쳤다. 그런데 갑자기 유방(劉邦)이 호통을 쳤다.

"한신(韓信)을 잡아라."

그러자 행렬에서 많은 무사들이 뛰어나와서 한신(韓信)을 꽁꽁 묶었다.

한신(韓信)은 별로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과연 사람들의 말대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고, 높이 나는 새가 보이지 않으면 활을 거두며, 적국을 격파한 후에는 모신도 죽이는 겪이로구나. 천하의 임자가 정해졌으니, 나도 마땅히 죽을 떄가 되었었다."

유방(劉邦)은 그의 말을 듣고 말했다.

"네가 모반한다는 밀고가 있었으므로 너를 체포하는 것이다."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을 수레 뒤에 실은 뒤에는 운몽택 유람이고 뭐고 모두 집어치웠다. 제후들에게도 오지 않아도 된다는 기별을 띄우고는 곧바로 낙양으로 돌와왔다.

  낙양으로 돌아온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에게 과오보다는 공로가 훨씬 많았고, 게다가 모반에 대한 명백한 증거도 없었기 떄문에 그를 석방하면서 초왕에서 회음후로 지위를 낮추었다.

과거 초나라와 한나라가 전쟁을 할 떄 한신(韓信)이  항우(項羽)를 도왔더라면 항우(項羽)가 천하를 통일하게 되고, 한신(韓信)이 유방(劉邦)을 돕는다면 유방(劉邦)이 천하를 장악하게되며, 만약 한신(韓信)이 유방(劉邦)을 등지고 스스로 세력을 확장했다면 항우(項羽), 유방(劉邦)과 함께 삼국 정립의 형세를 이루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신(韓信)에게는 당시 여러 차례 자립할 기회가 있었고, 뿐만 아니라 한신(韓信)에게는 당시 어려 차례 자립할 기회가 있었고, 주변의 사람들도 그에게 스스로 왕이 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모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한나라가 건립된 후에 한신(韓信)은 왕으로 책봉받기는 했지만, 내심으로는 섭섭함이 없지 않아서 '마음속에 원망을 품고' 있었다.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의 그런 면을 예견했기 때문에 먼저 선수를 쳐서 그의 작위를 삭감하고, 다시 그가 갖고 있는 권력의 대부분을 해제하면서 그를 실제로 도읍에 연금했다. 얼마 후에 유방(劉邦)의 아내 여치가 소하와 은밀히 모의하여 한신(韓信)을 조정으로 유인한 후에 모반이라는 죄명으로 그를 포박하고 나서 무사를 시켜 그를 죽였다.

 

한신(韓信)은 장수의 재능을 갖춘 자이기는 하지만 패왕이 될자는 아니니, 이는 의심할 나위도 없는 사실이다. 유방(劉邦)은 '장수를 통솔하는 데' 매우 능해서 패왕이 될만한 자이지만, 다른 한편 건달이기도 했다.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을 대할 때 덕이 아니라 술수로 통제하였다. 전통 사회에서 술수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린 자는 쉽게 업적을 쌓았으나, 덕으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린자는 오히려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누가 인심을 얻어야 비로소 천하를 얻는다고 했던가?

건달, 무뢰한도 천하를 얻지 않았는가!

건달, 무뢰한은 무엇에 기대어서 천하를 얻었을까?

인재를 얻었기 대문에 그러한 성공이 가능했다!

 

 

대선 정국에 맞물려 다시 한번 생각하게하는 글이어서 올려봅니다.

지난 대선과 그리고 이번 대선 현명한 생각을 해야할텐데....